인생을 쏜살처럼 스치고 지나치는 순간에 비유하기도 한다. 찰나의 매 순간이 모여 긴 인생의 여정이 완성된다. 찰나는 ‘아주 짧고 빠른 시간’을 비유한 말이다. 찰나는 산스크리트어의 ‘크샤나’를 소리나는대로 음역한 것이다. 1찰나는 75분의 1초, 즉 0.013초라고 한다. 흔히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순간에 64찰나가 지난다고 하니, 찰나는 시간의 최소 단위인 셈이다. 이 반대 개념의 단어로는 ‘무한히 긴 시간’을 뜻하는 ‘겁’이 있다.
김부희 작가가 작품의 주제로 삼는 ‘너무 짧고, 긴 하루’라는 말에서 찰나와 겁의 뉘앙스를 읽을 수 있다. 누구에게는 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지지만, 반대로 어떤 이에게는 총알처럼 빨리 지나간다. 같은 사람이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간의 길이는 제각각 다르게 와 닿기 마련이다. 그만큼 시간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해석된다. 김부희의 작품들은 일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상황들이 서로 다른 시간의 개념을 낳고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.
프로스트의 시처럼, 가지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끝까지 남을 수 밖에 없을지 모르겠다. 자잘한 선택의 순간들은 늘 다가오고, 작고 큰 결정들은 오래오래 나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. ‘그때 그걸 선택하지 않았더라면’하는 후회도 있었고, ‘정말 멋진 결정이었어’라는 때도 있다. 예측대로 되는 법은 거의 없었고, 늘 사는 일은 생경함을 동반한다. 살아내는 일은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낯설음이고, 서툼의 반복이다.
반복되는 삶의 연속성은 결국 ‘Y’의 선택과정이다. 양 갈래의 길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도 크게 달라진다. 김부희 작가 역시 그렇게 스치는 여러 상황의 순간들을 포착한 이미지로 화면을 구성해냈다. 자칫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삶의 찰나들에 손맛을 최대한 살린 감성적인 붓 터치로 조형적인 깊이가 더해진다. 그 과정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이름 모를 소녀이거나, 노부부 혹은 자전거 탄 사람, 빈 공원 등 다양하다. 굳이 공통점을 찾으라면 특정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인물들과 소재라는 점이다.
가령 작품 <평화>는 인물과 공간의 대조적이고 극적인 만남을 잘 표현하고 있다. 전체적으로 노랗게 채워진 큰 방안 한쪽 끝에 흰 색 가로의자가 놓였다. 거기에 걸터앉은 여인의 인상이 남다르다. 넋을 놓은 듯 무심히 무료하게 벽에 등을 기댄 모습에서 여러 감정들이 읽힌다. 특히 바로 옆엔 위쪽으로 길게 트인 문이 배치되었는데,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의 존재감은 여인의 복잡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기에 충분하다. 버스 정류장에 우두커니 앉은 한 여인을 표현한 작품 <숨고르기>, 한적한 레스토랑 소파에 나란히 앉아 물끄러미 장면을 응시중인 <노부부> 작품도 같은 맥락이다.
김부희가 그림에 등장하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전하려는 감정 중에 ‘고요함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. 군중 속의 외로움, 고요 속의 외침 등 서로 다른 상반된 감정과 감성이 교차하는 순간의 경계를 보여준다. 수 많은 인파속에서 스치는 타인과의 극적인 만남들, 하지만 이내 거품처럼 사라지는 허망한 만남들이 난무하는 일상의 반복. 우리가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살아가는 매 순간의 하루하루 모습이다. 같은 24시간의 하루지만, 어느 땐 24분 혹은 24일처럼 서로 다르게 와 닿는 현실을 수없이 반복해서 만난다. 그래도 낯섦과 익숙함의 만남이 동행하며, 찰나와 억겁으로 짜인 세상사는 조금씩 제 모습을 완성해간다. 그것이 인생이다.
김윤섭: 미술평론가.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과정 졸업.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 위원, (사)한국미술사가감정협회 전문위원,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,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록위원,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,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,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중이다.